[문화대상 이 작품]존재감 없는 소년의 ‘모두를 위한 위로’

[문화대상 이 작품]존재감 없는 소년의 ‘모두를 위한 위로’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의 한 장면. (사진=에스앤코)[김일송 (책공장) 이안재 대표·공연칼럼니스트] “난 시작도 하기 전에 멈추는 법을 배웠어, 실수하기도 전에 자신을 숨겨야만 했어. 눈길을 끌지 않게 내 모습을 감추는 거야, 부딪히지 않으면 실수할 일도 없어. 그래 피하는 거야, 해가 뜨거울 땐, 그래 피하는 거야. 넌 알잖아, 알고 있어. 창문 밖을 홀로 서성이는 나, 좀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을까.”

여기 한 소년이 있습니다. 앞선 노랫말처럼 튀어 보이지 않으려, 그래서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투명 인간이 되어 존재감 없이 살려 애쓰는 소년이 있습니다.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의 주인공 에반 핸슨입니다. 이야기는 여름방학을 마친 에반의 가을학기 첫 등교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사실 그리 드문 경우도 아니죠.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해 안달인 소수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은 나서지 않는 조용한 삶을 바랄 테니까요. 그런데 에반에게는 조금 다른 점이 있습니다. 에반은 사회불안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을 겪고 홀어머니 아래서 성장한 에반은 사람들 앞에 노출되는 데에 대한 극심한 불안과 공포를 느끼고 있는 사회불안 장애 환자입니다.

그런 에반에게 심리 상담사는 자신에게 매일 편지를 써보라고 조언합니다. 모든 일은 바로 그 편지에서 비롯됩니다. 에반이 짝사랑하던 조이에 대한 마음을 드러낸 (자신에게 쓴) 편지가 하필 조이의 오빠 코너에 눈에 띈 거죠. 코너는 마약을 즐겨 하는 반항아로, 에반은 말 한마디 제대로 붙여보지 못했던 상대입니다. 그런 코너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코너의 주머니에 있던 에반의 편지가 코너의 유서로 오해를 사게 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평소 아들과 대화가 없던 코너의 가족들은 에반에게서 코너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고, 그들을 위로하고자 에반은 그들이 듣고자 하는 말을 꾸며냅니다. 코너가 마약을 끊으려 많이 노력했다는 둥, 여동생 조이를 자랑스럽게 여겼다는 둥. 처음에는 순수한 위로의 말이었습니다. 단 한 번의 위로면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만남이 지속되면서, 상황은 에반이 통제할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게 된다. 결국, 에반의 추도 영상이 소셜미디어(SNS)에 확산되어 추모 물결을 이루며 이야기는 정점에 다다릅니다. 되돌아가기에 너무 멀리 온, 에반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은 현재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목받는 벤지 파섹과 저스틴 폴이 작사와 작곡을 맡은 작품입니다. 듀오 ‘파섹 앤 폴’은 영화 ‘라라랜드’와 ‘위대한 쇼맨’, ‘알라딘’ 등의 영화 음악으로 국내에도 많은 팬층을 가지고 있죠. 이들의 음악 덕에 작품은 2016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 후 이듬해 제71회 토니어워즈에서 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고, 최고의 뮤지컬상, 극본상, 작곡상 등 6개의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이후로도 재연되며, 그래미어워즈와 로렌스 올리비에어워즈까지 석권한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은 2020년 영화로 제작되었고, 2021년 국내에서도 개봉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뮤지컬로 아시아 초연 중(박소영 연출, 양주인 음악감독, 이현정 안무, 오필영 디자인디렉터, 2024년 3월 28일~6월 23일)입니다. 갈무리는 에반의 편지를 살짝 비틀어 대신합니다.

“이 글을 읽는 분에게, 오늘은 좋은 날이 될 거예요. 왜 그런지 말해줄까요? 왜냐면 오늘은, 적어도 오늘은, 당신이 당신이니까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의 한 장면. (사진=에스앤코)

casinoonline-b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