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와 심상정, 그들의 화법

정청래와 심상정, 그들의 화법

민주당이 ‘이대동문회’냐고 물었다. 통합민주당이 15% 여성할당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하자 나온 어떤 이의 반응이다. 당원의 뜻과 국민의 뜻이 반대라면 국민의 뜻을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부 후보 선출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분란에 대해 또 다른 이가 보인 반응이다.

이 두 사람의 말은, 놓고 보자면 타당한 말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나의 공당이 특정 학맥으로 이어진 동문회가 되는 것은, 이미 한 나라가 ‘‘고소영’이라는 사적 관계인들로 인해 망가지고 있는 데서 볼 수 있듯 위험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최소한 유권자로부터 표를 받아 권력을 얻고자 하는 대중적인 정당이 국민의 뜻에 반하는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것은 어리석어 보인다. 그런 점에서 액면가 그대로 위의 두 말은 들을 만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말이 놓인 맥락이며, 그 말을 뱉은 사람의 개인적인 역사에서 드러나는 ‘속뜻’의 정체다.

그런 점에서, 위에서 인용한 두 말은 말 자체가 아니라 그 말을 뱉은 사람을 봐야 진짜 의미를 알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기도 하다.

여성할당제 15%에 대해 성전환이라도 해야겠다며 냉소를 보낸 이는 바로 민주통합당의 마포지역 예비후보인 정청래 전 의원이다. 한명숙 대표를 비롯해 자당의 주요 예비후보자들 중 이대 나온 분들을 살뜰하게 아웃팅했다. 정청래 전 의원의 기분은 이해하지만 – 4년 동안 정치낭인으로 절치부심했는데 하루 아침에 후보자리를 내줘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을 터 – 너무 나갔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있을 뻔한 동정표를 말끔히 깎아 버렸다. 특히 공직후보자의 여성할당 30%를 당론으로 하고 있는 정당의 당직자 입장에서 보면 정말이지 어이없다.

정당의 후보자에 대한 여성할당은 선출직 공직자의 여성 비율을 높이는 첫걸음이다. 다시 말해 여성을 출발선에 서지도 못하게 했으면서 그간 경주에서 1등 했다고 능력 운운하는 것은 솔직히 염치없는 행동이다. 아마도 정청래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에서 하고 있는 소수자 우대정책도 참 문제가 많은 정책이리라. 그런데 정청래 전 의원은 그것을 학벌과 묶어 버렸다. 민주당이 도입하고자 하는 여성할당제가 이대동문회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정청래 전 의원이 밝힌 10명도 되지 않는 예비후보자의 이름 뿐이다. 그 명단엔 자신과 같은 선거구에서 경합 중인 후보도 끼어 있다. 이 정도면 무리도 보통 무리가 아니다.

염치의 관점에서 보자면, 당원의 뜻과 국민의 뜻을 교차시킨 이도 마찬가지다. 통합진보당의 공동대표 중 한 명인 심상정 대표는, 진보정당이 원칙으로 그동안 지켜왔던 진성당원제의 문제점을 그렇게 표현했다. 실제로 3주체의 통합으로 만들어진 통합진보당은 기존 3주체 간의 체력 차이가 너무 난다. 그래서 소수 세력 출신이 당내 경선을 뚫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 경우에 문제라면 새로운 가치 지향을 바탕으로 화학적 결합을 하기보다는 선거를 앞둔 세력 간의 물리적 결합을 선택한 통합의 방식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그런데 그것을 진성당원제에서 찾는다.

누군가 그랬다. 민주주의는 하나의 이념형일 뿐이고 현실에서는 언제나 과정으로만 존재한다고 말이다. 누구나 욕하는 현재의 대통령이 바로 심상정 대표가 말하는 국민의 뜻에 의해 민주적으로 뽑힌 사람이라는 것을 잊은 걸까. 그리고 진보정당에서 진성당원제를 채택한 역사적 맥락 역시 잊은 걸까.

우리나라의 정당정치 구도는 몇몇 리더 중심의 계파로 존속되는 형태였다. 동교동계니, 상도동계니 하는 것은 리더가 살던 동네를 딴, 마치 뒷골목 일진 같은 이름 아닌가. 그런 상황에서 결사체인 정당의 당원들은 언제나 주변화되기 일쑤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 바로 진성당원제이다. 당의 의사결정 구조를 하향식에서 상향식으로 바꾼다는 것의 의미다. 또한 다수의 의견 속에서 언제나 주변화되었던 소수 의견을 제도권 내에 반영시키고자 하는 진보정당의 입장에서 진성당원제는, 소수의 세력화를 위해 효과적인 제도이기도 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심상정 대표는 패권주의를 말했어야 옳다. 마치 우리나라의 후진적인 정치구조가 민주주의 자체에서가 아니라 지역주의에서 나오는 것처럼, 진성당원제를 훼손시키는 것은 특정 정파의 패권이 문제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럴 경우 당내 리더십에 문제가 있을 것 같으니 일반론으로 끌고 나갔다. 염치없는 행동이다.

정청래 전의원이 FTA를 지지하는 어떤 여성후보의 전력을 지적하면서도 김진표 의원에 대해선 침묵했던 것과 심상정 대표가 40%의 지지에 육박하는 민주통합당에 가지 않고 5%의 지지를 밑도는 통합진보당에 있는 것은, 스스로가 하는 말이 얼마나 부박한 논리에 기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현실의 말은 언제나 구체적인 맥락이라는 여백 사이에 놓인다. 그래서 위험한 말은 언제나 일반론의 형식을 띠기 마련이다. 정청래 전 의원의 이대동문회 발언과 심상정 대표의 국민의 뜻 발언이 묘하게 겹치는 것은 그래서다. 언젠가는 그들이 지금 내뱉고 있는 말들이 현실의 무게를 가지고 그 두 사람을 향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어떤 ‘특수한’ 일반론으로 곤궁함을 빠져나갈까. 적어도 사람들이 달이라도 제대로 보게끔 손가락을 흔들진 말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힘들다면 아예 손을 주머니에서 꺼내지 않는 것도 한 방법이다. 현재의 상황에선 어떤 부탁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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