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무상급식일까?

왜 하필 무상급식일까?

김상곤 교육감이 당선될 때만 해도 그가 ‘무상급식’을 들고 나올 줄은 아무도 몰랐다. 아니 그가 들고 나온 무상급식을 한나라당 교육위원들이 그토록 강력하게 반대할 줄도 몰랐고, 그 반대가 그토록 크게 이슈화가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급기야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무상급식은 최대 이슈가 돼 버렸다. 어찌 보면 참으로 초라한(?) 이슈인 무상급식이 어째서 이렇게 ‘스타’로 급부상한 것일까?

사실 한나라당측에서 소위 ‘좌파’ 혹은 ‘진보적’인 정책들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한 것이 무상급식만은 아니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강력한 반대에 국민들은 생각보다 ‘무신경’했다. 하지만 무상급식은 달랐다. 처음엔 그저 인터넷 매체에서 기사화를 했던 것이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메이저 언론에서조차 언급하는 수준으로 확산되더니 급기야는 거의 모든 정당들이 ‘무상 급식’에 대해 당론을 정하느니 마느니 하면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수준에까지 이른 것이다. 어째서 ‘좌파’적이고 ‘진보’적인 무상급식이 이토록 큰 파문을 불러일으키게 된 것일까?

ai 투자 :
결론부터 말하면 ‘무상급식’은 ‘좌파’적이지도 ‘진보’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바로 그 점이 무상급식이 지금과 같은 파괴력을 지니게 된 가장 큰 이유다. 김상곤 교육감을 어떻게 바라보든, 그리고 실제로 그가 어떠한 이념적,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든 상관 없이 ‘무상 급식’ 그 자체엔 이념도 정치도 없다. 대신 보편적인 ‘선’과 ‘선진 복지 제도’라는 두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배를 곯는 아이들이 점심 시간에 마음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한다는 건 매우 보편적인 ‘선’이다. 그건 단지 이념이나 정치가 아니라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당연한 것이다. 어느 정당을 지지하든 어떤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든 이처럼 보편적인 선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다. 쉽게 말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일이라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여기에 ‘정치’나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게 되면 사람들은 ‘갸우뚱’ 하게 된다. ‘착하게 살자’라는 가치에 정치나 이념을 들이대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당연히 ‘무상급식’에 대해 반대를 하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로부터 동의를 얻기 어렵게 된다.

그리고 또 한가지가 ‘선진 복지 제도’다. 무상급식은 그저 ‘못 먹는 애들 떡 하나 더 주는’ 식의 복지가 아니라, 그 못 먹는 아이들이 ‘자존심’ 상하지 않고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즉 단순히 가난한 이들에게 적당히 ‘수혜’를 베풀고 그것을 ‘복지’로만 생각했던 개념과는 다르다. 거기엔 단순한 금전적 가치만이 아닌 인간에 대한 ‘존중’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 많은 이들이 공감을 한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비록 바라 보는 이들에 따라 매우 다른 평가를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분명히 선진화 되었으며, 이는 ‘복지’라는 부분에서도 선진화된 형태의 것을 요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이미 언론에 수없이 소개된 북유럽의 복지 제도를 우리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더이상 복지를 못 사는 이들을 위한 ‘특수한’ 제도가 아니라 국가가 개인에게 당연히 해줘야 하는 ‘의무’로, 그리고 세금을 내는 개인은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그 의무와 권리는 빈부에 상관없이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한 ‘존엄성’이라고 하는 것과 직결되어 있다. 당연히 ‘자존심’을 ‘수혜’를 얻는 대가로 포기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더 이상 동의하지 않는다.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정치 이념적 성향을 떠나 과거 우리 사회는 ‘복지’를 ‘수혜’로 접근했고, 보편적인 ‘선’보다는 ‘반독재’나 ‘민주화’라는 구호에 보다 많이 열중했다. 그리고 그 때는 그러한 접근 방식이 그 시대에 통용되는 일종의 ‘시대 정신’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회는 변화했고 이제 더이상 사람들은 그러한 접근 방식에 대해 잘 공감하지 않는다. 대신 ‘무상 급식’에 보다 많은 지지를 보내는 것이다.

따라서 ‘무상급식’은 비록 그 자체로는 매우 작은 것으로 보이지만 그 바탕에는 현재 우리 사회의 ‘시대 정신’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단지 선거에서의 전략으로 한번 사용되고 말 ‘바람’같은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제2, 제3의 무상급식과 같은 것들이 지속적으로 요구될 것임을 의미한다. 당연히 이를 가벼이 여기고 전략이나 전술차원으로 접근하게 되면 시대 정신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이 되고, 그러한 접근 방식을 택한 정치 세력은 시대 흐름에 뒤쳐지게 된다. 그것은 어느 정치 세력이든, 어떤 이념적 성향을 가지고 있든, 어떤 의도이든 마찬가지다.

누가 시대 정신을 읽을 것인가, 아니 그 누가 자존심을 버리는 대신 차라리 배를 곯는 걸 택하는 아이의 마음을 읽을 것인가, 거기에 지방 선거의 성패는 물론 국민의 마음을 얻는 궁극적인 해답이 담겨 있다.

EBS <지식채널e> 전 담당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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