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마을 대통령 선거와 삶의 조건

산골마을 대통령 선거와 삶의 조건

세상과 연락이 직접 닿지 않는 곳에 살다보면 아무래도 세상일에 관심을 덜 가지게 마련입니다. 마을이라고 달랑 세 집, 아이들까지 합쳐 주민이 여섯 명인 산골마을엔 홍보물도 아랫마을로 배달돼 큰맘 먹고 오르내리다 가져오지 않으면 읽을 기회가 없고, 유세를 들어볼 기회도 거의 없어 선거철인지 아닌지도 모를 정도로 조용합니다.

대통령을 뽑는 투표다 보니 속으론 관심이 있을지언정, 겉으론 추운 겨울을 보내기 위해 땔나무 마련하고 계곡에서 끌어오는 물을 어찌하면 얼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연구하고 몸 움직이는 게 더 시급한 사람들처럼 산골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국회의원이 되든 산골살이엔 그리 큰 변화가 없는 것도 사실이고 당장 시급한 것은 물이 얼고 땔나무 하는 것임엔 틀림없습니다.

그럼에도 투표하는 날만 되면 투표장에 가기 위해 아침에 연락하고 모이는 게 신기합니다. 몇 안 되는 동네사람이라 모이기 쉽고, 직장 다니느라 시간이 없는 사람들도 아니어서 함께 투표장에 가는 것이 어렵지 않은 일이긴 합니다. 투표가 이 나라 국민으로서 행사하는 권리라는 의무감이 강한 것도 아닌 걸 보면 나뿐만 아니라 세상과 다른 사람들 삶의 조건을 조금이라도 낫게 바꿔보겠다는 의지표현이 아닌가 싶습니다.

대통령 선거가 있는 올 12월은 유난히 추위가 빨리 찾아왔습니다. 해마다 계곡물이 12월 끝자락이나 1월초 추위에 얼었는데, 올해는 선거날 아침 추위에 동네 물이 모두 얼었습니다. 계곡물을 얼지 않게 하려고 물 호스 바꾸는 공사를 하며 ‘올해는 물이 얼지 않겠지’하고 기대 했는데, 선거날 일어나 보니 허무하게도 물이 꽁꽁 얼었습니다.

이제 긴 겨울동안 집안에서 수도꼭지만 돌리면 물이 나오는 편한 세상은 끝이 났습니다. 계곡물이 얼면 쓸 수 있게 해놓은 우물물도 이날 아침에 함께 얼어버려 어떤 물도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우물물은 땅속에서 나오는 물이라 계곡물에 비해 좀 따뜻해선지 좀처럼 얼지 않고 흐르기 때문에 물 양이 적어도 겨울동안 유용하게 쓰고 있습니다.

이 우물물까지 얼었으니 동네가 얼어붙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렇다 해도 올해만 겪는 일도 아니고 해마다 겪는 일이라 달관을 했는지 걱정들은 하지만 다른 선거 때와 다름없이 아침부터 투표하러 가기 위해 모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습니다. 일 때문에 아내 주소를 이곳으로 해놓지 않아 투표하러 가려면 차로 2시간 반이나 가야 하는데 여길 다녀와야 할지 어떨지 고민되었습니다. 웬만하면 한 표를 포기하고 싶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조건을 핑계로 쉽게 투표를 포기한다면 우리 모두가 함께 사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대통령 선거가 끝났습니다. 당선자도 나오고 떨어진 사람도 나왔습니다. 당선결과에 기쁨이 넘치는 사람들도 있고, 실망과 좌절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당선인에 따라 삶의 조건이 달라지기 때문에 기쁨과 실망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누가 되었든 우리 삶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삶의 조건이 바뀌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삶의 조건이 삶을 결정 짓는다 생각하기 때문에 삶의 조건을 변화시키지 못하면 심한 좌절감과 불행을 느낍니다.

삶의 조건과 별개로 삶이 있을 순 없지만 삶의 조건이 삶을 결정 짓는다 믿는다면 가난한 삶은 항상 불행하고 부자는 항상 행복하고, 권력을 잡은 사람은 항상 행복하고 권력을 잡지 못한 사람은 항상 불행하다는 착각에 빠집니다. 삶의 조건을 어떻게 바꾸는가도 중요한 일이지만 삶의 조건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가 삶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더 현명한 방법임엔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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