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제 먹을 것은 갖고 태어난다”

“사람은 누구나 제 먹을 것은 갖고 태어난다”

월간 토마토가 5년차를 넘어 아직 순항 중이다. 내근 직원 3명으로 시작했던 사업 규모는 현재 채용을 진행 중인 디자이너 한 명까지 채용한다면 모두 17명으로 늘어난다. 인력 채용과 관련해 가장 많이 고민했던 시점은 8명까지였다. 세 명에서 네 명, 다섯 명, 여섯 명, 일곱 명, 여덟 명으로 몸집을 불릴 때마다 함께 늘어날 고정비용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인력 규모 조정과 계획이 사업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 지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터고 아웃소싱이나 프리랜서를 활용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는 조언도 많았다. 그래야 매출 증감에 따라 탄력적이면서도 빠르게 고정비용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 옛 어른 말씀이 떠올랐다.

“사람은 누구나 제 먹을 건 갖고 태어나는 거여.”

농경문화 시대에 새 식구는 가구 노동력 증대를 의미했고 이는 생산성 증가로 이어졌을 터다. 그 시대에 적용할 금언을 지금 이 시대에 끌어 당겨 적용하는 것이 얼마나 철딱서니 없는 짓인가 모르는 바도 아니다. 사실 저 말은 결정에 스스로 확신을 부여하기 위한 마지막 양념이었을 뿐이다.

고백컨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월간 토마토 가치가 최대 이윤을 구하는 일반 기업과 같았다면, 아웃소싱이나 프리랜서 제도 도입에 더욱 적극적이었을 것이다. 우리 가치가 그렇지 않기에 이런 제도 활용은 적용하기 쉬운 논리가 아니었다.

‘돈 그 이상의 가치’라는 거창한 이유를 대며 사람을 뽑아댔다. 심지어 일부 대기업 흉내까지 내며 우리 가치에 동의하고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은 언제든 채용하겠다는 호언장담도 일삼았다. 사람이 늘면 그 사람이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통해 재정 압박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별다른 근거 없는 확신도 있었다. 근거라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절실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최고 성과를 낼 수 있고 이 성과가 모여 최상의 조직성과로 이어질 거라는 논리였다.

이런 논리를 바탕을 새 구성원을 맞이하는데 있어 공채보다는 낙하산, 경력보다는 신입을 선호하는 월간 토마토다. 낙하산이라는 말이 무척 부정적이지만 우리는 채용계획이 없는 상황에서 공채가 아닌 자발적 지원 내지는 선 제안을 통해 입사한 이들을 이렇게 부른다. 낙하산과 공채 비율은 대략 4대 6 정도다.

신입 직원이 경력에 비해 인건비 부담은 적을지 모르나 여러모로 위험부담은 크다. 인건비 지출이 큰 경력직은 그만큼 검증 과정을 거쳤고 경험과 연륜으로 신입보다 훨씬 높은 생산성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관리비용을 고려하면 경력직 채용이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낙하산과 함께 신입 채용을 선호하는 이유도 ‘가치’때문이다.

창의적으로 창조적인 일을 해야 하는 우리 월간 토마토는 ‘말랑말랑한 머리’가 좋다. 이쪽 분야에 경력직은 대부분 일정 자신 업무와 삶의 방식에 있어 자리 잡은 신념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신념이 우리 가치와 일치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런 인물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수직적 구조가 내용을 규정한다

이런 기준으로 사람을 긁어모아 이제 15명을 넘어 섰다. 사람은 누구나 제 먹을 건 갖고 태어나는 것인지, 아직 별 탈은 없다. 구조조정도 없었다. 물론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그래도 잘 버티고 있다. 오히려 사람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문제는 고정비용 부담이 아니라 엉뚱한 곳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있다. 10명이 일종의 변곡점이었던 것 같다. 누군 한 사람이 감당하고 교감할 수 있는 인원을 8명이라고 한다. 사람과 시스템마다 다르겠지만 경험에 의하면 어느 정도 맞는 말인 듯싶다. 10명이 넘어서면서 조직 생존만큼 중요한 고민이 ‘관리’가 되어버렸다. 사람을 대상으로 ‘관리’라는 개념을 적용하는 것이 맞는지 늘 고민스럽지만 일단 일반적이고 이해하기 쉬우니 사용하도록 한다. 우리 조직은 앞서 말한 것처럼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갖춘 경쟁력이 모여 조직 경쟁력을 만든다. 사업적으로 우리가 갖춘 유일한 경쟁력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에게 조직 관리는 조직 생존과 직결하는 절대 가치다.

근데 이게 만만치 않다. 조직 가치와 비전 공유라는 대 명제를 갖춘 상태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심하게 낭만적이었다. 이 영역이 얼마나 전문적이며 심도 깊은 기교가 필요한 지를 요즘 절감하고 있다. 연봉이나 승진, 상여금 등 일반적인 보상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우리 같은 조직은 더욱 그렇다.

핵심은 ‘내부 커뮤니케이션’이었다. 우리 조직은 경영기획실, 편집실, 제작실이라는 세 개 단위로 구성했다. 각 단위 업무 특성이 명확하다. 각 실은 실장이 책임지고 팀장과 팀원이 있다. 수직적이지 않은 조직을 추구하며 수직적 조직구조를 갖춘 것부터가 딜레마다. 인원이 적었을 때는 수평 조직을 만드는 것은 조직 형태가 아니라 조직 마인드에 달렸다고 생각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확신은 어느 정도 현실에서도 맞아떨어졌다.

근데, 조직이 커지면서 조직을 담은 틀은 조직 성격과 색깔을 규정하기 시작했다. 업무를 진행하는 방식이 무척 수직적으로 바뀌었다. 각 실장과 팀장, 팀원이 격의 없이 지낸다는 것만으로 자위하기에는 이런 업무 처리 방식이 너무 고착화되어버렸고 ‘격의 없다.’라는 평가 역시 무척 자의적이다. 이를 해결하려 조직 구조 자체를 수평으로 바꿔버릴 용기도 없다. 핑계라면 그렇게 하기에 인원도 너무 많고 자체 사업과 외주 제작물 양이 너무 많다. 이것 역시 기존 틀에 길들어버린 관성 때문일 수도 있다. 수직적 구조 자체를 과감하게 해체해버려도 잠깐 과도기를 거친 후 무리 없이 제자리를 찾을 거라는 생각도 들지만 행동으로 옮길 만큼은 아니다.

취재기자 상대로 실험 진행

이 와중에 상대적으로 외근이 잦고 동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편집실 소속 취재기자를 대상으로 몇 가지 실험을 진행하려 준비 중이다. 거의 지켜진 적은 없지만 고정적인 출퇴근과 사무공간 내 ‘내 자리’라는 개념부터 해체해 볼 생각이다. 시간 노동보다는 과업 노동에 가까운 업무 특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시간 노동자와 같은 형태의 근무 조건을 갖출 필요는 없다는 판단에서다.

수직 조직을 견고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는 ‘감시와 통제, 책임 회피’다. 윗선은 감시와 통제를 하는 대신 책임을 진다. 보통은 감시와 통제는 강하게 이루어지나 책임 부분에 있어서는 느슨한 것이 현실이지만 여하튼 그렇다. 이 요소에서 벗어나는 방법 중 눈에 보이지 않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을 것이다. 다른 이유는 ‘네트워크 강화와 창조적으로 일하기’가 표면적 이유다. 사무공간에서 인터넷 바다를 헤엄치는 것 대신 세상 속으로 들어가 표정을 보고 눈을 마주칠 수 있는 사람 속에서 헤엄을 치라는 얘기다. 이것이 더 많은 상상력을 키워줄 것이고 이를 토대로 한 창의적인 사고는 조직 전체 창의성을 높여줄 거라는 확신이 있다.

이 실험을 통해 다른 부서까지 근무 환경과 패턴을 조정할 계획이다. 그릇은 담는 물질의 형태를 규정한다는 자연스러운 원리를 조직에 적용해 볼 생각이다. 우리가 지닌 가치는 절대로 수직적으로 공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무한한 상상과 주체적이며 창의적인 사고를 토대로 서로 다른 사고가 섞이도록 조건을 만들어가야 한다. 물질이 섞일 때 단계에 따라 적정한 온도도 다르고 도달하는 시간도 다르고 필요한 빛의 양도 다르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대전광역시에서 <월간 토마토>라는 잡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 만 4년을 넘어 5년 차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금을 만들어내려 했던 연금술사처럼 ‘뭉클한 감동’에 중독돼 계속 실험을 반복하며 주위를 괴롭힙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월간지를 만들면 한 달 중 열흘은 빈둥빈둥 놀아도 되는 줄 알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현재는 월간지를 만들려면 한 달을 60일처럼 일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어설픈 도전을 계속하며 히말라야라도 오르는 사람처럼 결기에 차 있다가도 고집불통 철딱서니가 아닌가 싶어 은근 뒤통수가 간지럽기도 합니다.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잡지 만들기는 여전히 태풍에 휘둘리고 표류하며 여행 중입니다. 사람들은 잘 모르는데 우리끼리 치열한 그 여행을 가볍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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